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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책이야기]#5. 어린이라는 세계(저자: 김소영|출판사: 사계절) | 나의 부제: 우리는 어린이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가)

by 호두달걀 2021.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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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다른 책도 여러 권 읽었는데도, 후기를 적지 못했다. 이래저래 정신없는 일들이 흘러갔다.(그래서 글을 쓰지 못했다는 점ㅋㅋ) 역시 꾸준히 글쓰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번 후기는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다. 저자 김소영 님은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을 오랫동안 하시고, 독서교실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이 책에서는 그동안 어린이들과 함께 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어린이들을 보면 좋을지, 어른으로서 어린이들에게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면 좋을지, 더불어 우리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를 말하고 있다. 특히 내가 이 책의 최고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도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어린이'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여성 인권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범죄 처벌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 담긴 어린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순수한 만큼 정확한 대답에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만든다. 정말 힐링되는 책이었다. 아래에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잊고 있던 어떤 기억이 떠올랐는지,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 어떤 깨달음이 있었는지 자유롭게 쓰려한다. (*표를 중심으로, 첫 번째 문단은 저자의 글, 두 번째 문단은 나의 생각이다.)

 

*1부 -  <어린이의 품위>

과자를 먹을 때 바닥에 부스러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매번 노력하는 한 어린이를 보며, 저자는 '사회생활'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회생활이란 마음가는 대로 해서도 안 되고, 보고 배워서 '일부러'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과자 부스러기를 땅에 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회생활을 배우고 있다. 어른은 어린이가 실수로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면, 바닥을 치워주고 다음에는 가루가 덜 날리는 과자를 대접하는 사회생활을 하면 된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직장생활은 왜 이렇게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되지.'이 때문이었나보다. 마음대로 해서도 안 되며, 나는 아직도 부족한 인간이라 보고 배워서 '일부러' 그렇게 해야만 한다. 만약 실수를 해도 너그럽게 봐주는 상사가 있다면 좋으련만, 어떤 이는 내 실수를 '건 수' 잡아서 망신을 주는가 하면, '사회성을 알려준다'는 명목으로 잡도리를 하기도 한다. 나라도 과자 부스러기 흘리는 실수를 용인하고 부스러기가 덜 날리는 과자를 대접할 수 있는 그런 너그러운 어른이 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1부 - <놀이 아니고 놀기>다양한 경험을 하고 지식을 쌓는 것 물론 필요하다. 하지만 노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놀기'란 예측할 수 있을 때 확실히 재미있다고 말한다. 놀기로 인해 얻는 게 없어도 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얻는 것이 매우 많다고 말한다. 그때그때 필요한 규칙을 만들고, 규칙을 고치고, 승패를 경험하는 것 등 아주 유의미한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또한 복잡한 감정을 경험하고 귀가했다가, 그 다음날이면 다시 깨끗이 잊게 되는 것 등 이러한 경험들이 어린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이 된다고 말했다.

 

아주 동의한다. 실제로 놀기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매우 많다. 조금 다른 결로 이야기를 하자면, 놀이/게임을 활용한 학습효과의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전에 내가 만들었던 콘텐츠의 내용을 살짝 말하자면, 학생들은 활쏘기 게임을 이용해 활쏘는 방향을 찾기 위해서는 '역함수'를 공부하고, 농구 게임을 이용해 공 튀기는 모습을 보면서는 '포물선'을 공부했다. 이 외에도 놀이와 게임을 활용한 학습콘텐츠에 관해 계속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놀이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는 엄청난 사고 과정이 일어난다.)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쉬고 있는 이 시간에도 내 인생에 필요한 자양분이 되는 걸까? 아니면 자양분이 될만한 활동을 내가 찾아서 해야 하나?(왜냐하면 난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니까?) 또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1부 - <읽고 쓴다는 것>저자의 독서교실 책꽂이에 있는 책인데도 한 어린이가 직접 구매해 저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어린이는 책과 함께 편지를 주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이 책이 선생님에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먹고 사는 것에 지쳐 우리는 마음을 전하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이 세상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어른들로 가득하면 좋겠다. 

 

****1부 -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가족끼리는 닮는다. 얼굴, 생활 습관, 말투 등 말이다. 하지만 같지는 않다. 그래서 저자는 어린이의 개성은 복잡하게 만들어 진다고 말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것,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던 것, 인식하지 않고 모르고 지나친 것 등 다양한 경험들이 섞여서 말이다. 그래서 어린이의 모습을 만드는 사람은 어린이 스스로 자신이다. 그래서 저자는 '개성'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유성'이라 달리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우주는 광활하다. 서로 달라서 생기는 들쭉날쭉함은 당연히도 안정적인 질서다. 우주는 이 들쭉날쭉함을 품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넓다. 그러니 각기 다른 고유성을 가진 우리들 모두 안심하자.

 

우리가 겪고 생각한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이다. 그것이 우리의 '고유성'이다. 그러니 굳이 다른 사람처럼 할 필요도,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 조급해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다가도 걱정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 30대에도 이래도 되는 걸까?'

그러다가도 글을 쓰며 든 생각은 '30대이어도 이룬 것도 별로 없어서, 잃을 것도 없으니,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지 않을까?...'

 

*2부 - <마음속의 선생님>

어릴 때 기억의 남는 선생님과 그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선생님에게 오해를 샀던 일, 그래서 서운했던 감정,  서운했던 감정들을 늘어놓으니 잊고 있었는데 또렷이 기억나는 좋았던 기억들도 말했다.

 

초등학생 때 너무 (부정적으로)강렬한 기억을 남긴 선생님들이 있어, 좋은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짜내고 짜내어 몇 분이 생각났다.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웃으며 인사해주었던 선생님의 모습이 기억난다. 오히려 학교 선생님보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불현듯 기억이 났다. 당시에 대학생 선생님이셨는데,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날이면 나에게 늘 손수 쓰신 엽서와 함께 선물을 주셨다. 그 엽서들은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피아노 선생님은 초등학생이었던 나를 데리고 멀리 가(어딘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마 선생님의 학교 앞이었던 것 같다.) 스파게티와 같은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고, 스티커 사진도 찍으며 놀아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에는 그게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 했다.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고 나니 멀리까지 학생을 직접 데리고 나가 밥을 사주고 시간을 보내고 놀아주는(?) 쉽게 하지 못할 일을 해주셨다는 걸 안다. 이제서야 선생님의 애정어린 마음을 깨닫게 되어 송구스럽다.

비록 나는 그 선생님과 2년 정도밖에 함께 시간을 하지 못했지만(그 이후에는 피아노를 관뒀기 때문이다.) 그런 선생님을 만났던 건 내 인생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선생님은 참 특별했었더라고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2부 - <어린이의 편식, 어른의 편식>

어릴 때 야외 단체 활동을 어려워하던 저자의 경험을 말했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야외 단체 활동을 무척이나 싫어하고 스트레스 받아 했다. 이런 점이 이상한 것인가 싶어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20대 중반을 넘기고 보니 어느새 야외 단체 활동이 나에게 어렵지 않은, 아무렇지도 않은 활동이 되어 있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아서 일까? 한 사람이 성장하는 건 새삼 신기하다.

 

***2부 - <삶을 선택한다는 것>

저자의 과거 기억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에 관해 말한다. 보통 아동 학대 가해자들은 그들이 어릴 때 부모의 이혼, 폭력 등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로 감형된다.

흔히 희생된 어린이들에게는 '피어 보지도 못했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표현은 '틀렸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인생은 새싹이 나고 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지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동 학대 가해자의 감형은 참 우습고 무식한 행태다. 가해자의 사정은 헤아리고, 피해 생존자에게는 모욕하고 기만한다. 사법부가 피해자들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것과 같다. 모든 어린이들이 부모의 이혼과 폭력을 경험했다고 해서 그들 모두가 폭력적인 범죄자로 성장하지 않는다. 

또한 어른의 한 순간과 어린이의 한 순간은 다르지 않다. 그냥 모든 순간이 똑같은 가치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라고 어린이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단지 어른보다 경험이 부족할 뿐이지 동등한 위치에 있다. 그냥 어린이들은 어른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다. 많은 어른들이 이 사실을 꼭 인지하고, '진짜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3부 - <저 오늘 생일이다요?>

실제로 어린이들이 자주 쓰는 어투이다. '~했어요' 대신 '~했다요?'체에는 조금 더 뽐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어린이들의 마음이 들어 있다. 또한 '선생님 이거 꼭 드세요' 대신 '선생님 이거 먹으세요'에는 꼭 먹어볼 것을 강력히 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어른들 사이에서는 어떨까?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소위 '높은' 쪽에 있는 사람이 말을 편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상사, 시어머니, 선배와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들은 편하게 반말을 할 것이고, 반대로 부하 직원, 며느리, 후배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존댓말을 할 것이다. 저자는 존댓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서열을 파악하고 어휘를 고르고 감정을 조절하는 일이며,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보아 가며 말하느라 참 고생이 많다고 말한다. 만일 어린이가 말 조절에 실패하게 되면 듣는 말은 "누가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래?"이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누가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래?"라는 말이 조금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과연 '어른한테' 그렇게 말한 게 잘못일까, 아니면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행위가 잘못인 걸까.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반말을 하는 한 쪽은 권위를 얻게 된다. 책에서도 인용했지만, 인류학자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존비법의 체계는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 노동을 '아랫사람' 몫으로 떠넘기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내가 잠시 몸 담았던 회사에서 우리 팀의 팀장님(우리 팀을 1팀이라 하자)은 팀원들에게 반말을 했다. 같은 사무실에 있던 2팀의 A씨는 3팀 팀장님을 부를 때, 성을 떼고 이름 뒤에 직함을 붙여 '(김)** 팀장님'이라 불렀다. 우리 팀 팀장은 그게 못마땅했는지, 예의 없다고 지적했다. '김 팀장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성을 떼고 '** 팀장님'이라고 부르는 게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는 나는 잘 모르겠지만(1, 2, 3팀 팀장님 모두 김씨 성의 소유자였다), 그는 예의 없다고 지적했다. 마치 '누가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래?' 하듯이. 정작 본인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나에게 '야', '너'라고 불렀지만 말이다. 

 

어린이들의 존댓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어른이 되고자 한다. 존댓말은 '서열'이 아니라 '존중'하기 위해 해야 하는 거다. 

 

**3부 - <내가 바라는 어린이날>

이 장에서는 어린이날에 관해 고찰해보게 되었다. 어린이날은 단순히 공휴일, 노는 날이 아니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이 존중받고 어린이임을 축하받는 날이다.

 

흔히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어쩌구'라는 표현을 많이들 쓰는데, 그런 표현도 지양했으면 한다. 어린이들과 우린 그냥 오늘을 위해 살아 있다. 나라의 앞날은 둘째치고 오늘 하루라도 잘 짊어지기를 바란다. 왜들 그렇게 거창한 표현을 쓰려고 하는지. 내 생각엔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거창한 말을 쓴 것은 아닐까? 보통 사람들은 정확하게 모르거나, 할 말이 없을 때 거창한 표현을 쓰고는 한다.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스페셜 프로그램들을 편성하면 좋겠다. 작년에 어린이날을 맞이해 중대본에서 진행한 어린이들과의 일문일답 브리핑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정은경 본부장님과 교수님들은 어린이들의 질문을 무시하지 않고 진중하게 대답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어린이들의 질문이라고 어른들이 무시할 수준도 아니었다. 오히려 여러 어른들이 이 브리핑을 보고 배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최근 유퀴즈온더블럭에서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어린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도 좋았다. 단순히 어린이들을 기쁘게 해 준답시고 영양가 없는 행사를 하는 게 아니라,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준비된다면 수신료도 전기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3부 - <길잡이>

어린이는 어른의 길잡이다. 어린이가 어른에게 알려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줄지 고민하면서 우리의 방향이 정해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사회의 문제는 학교, 가정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코로나19로 위급한 상황에서 학교보다 성매매 업소가 먼저 문을 열고,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어린이와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마이크가 주어지는 세상에서 학교와 가정이 청정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교육의 실패를 논하기 앞서 어른들의 행태를 먼저 되돌아봐야 한다. 내가 나한테 하지 않을 것은 남에게, 그리고 어린이들에게도 하면 안 된다. 내가 여가 시간에 그림 그리다 실수를 하면 나 스스로에게 "아, 망했네. 넌 구제불능이다"라고 말할 것인가? 보통은 그냥 새 종이에다 다시 그림을 그릴 것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새 종이를 가져다주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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