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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블 프로젝트

[매블 Day_11] 일상 | 사랑, 그 사람을 생각하고 마음 쓰는 것

by 호두달걀 202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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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았다. 그리고 할머니랑 함께 방을 썼다. 다 큰 어른이, 그것도 충분히 아주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내 방을 갖게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우리 할머니는 더 더 오래 사실 줄 알았다. 예기치 않은 가족의 상실은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는데, 그때의 내 모습을 떠올려보면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괜찮아 보여도 '괜찮은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난 이직 최종면접을 봤다. 최종면접을 다 보고 한 숨 돌리고 있는데 할머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 장례를 치르고 나서 난 새 회사 이직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정착에는 실패해버렸다. 나는 그곳에서 상사의 폭언을 듣고서는 심각한 번아웃이 왔었다. 내가 잘못했던 부분이 있었는지, 팀장님 마음에 안 들었던 부분이 많았던 것인지, 입사하자마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난 팀장님의 표적이 되었고 폭언을 들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수치심을 느끼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 회사는 내가 목표로 했던, 내가 몸 담았던 업계에서 큰 회사였다. 큰 회사를 가면 근무환경, 연봉, 배움 등등 나에게 이로울 거란 내 판단은 틀렸고, 이 업계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이곳이 이렇다면 난 더 이상 이 업계에 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시일 내에 퇴사를 결정했다.

 

퇴사를 하고 몇 개월 뒤 나는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상담의 초기 목적은 '내가 스트레스를 느끼는 부분을 파악하고 대비하여, 앞으로 맞이하는 직장생활에서의 스트레스를 줄인다'였다. 그런데 막상 상담을 진행하니, 회사생활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이상하게도 할머니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3n년을 할머니와 함께 방을 썼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함께 썼던 그 방이 내 방이 되었다. 처음으로 내 방이 생긴 것이다. 나는 살면서 내 방을 꿈꿨고, 어릴 때부터 내 꿈은 '독립'이었다. 마음먹고 일을 하면서 독립을 했을 수 있을 터인데, 정말로 '궁극적인 내 집'을 마련하겠다며 가족의 집에서 꾸역꾸역 할머니와 같이 방을 공유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내 방이 생기니 편했다. 밤에 침대 맡에 조명을 켜 두고 누워있으면 기분이 참 좋았는데, 좋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죄책감이 엄습했다. '내가 좋아해도 되는 건가...'라며. 편하다고 생각이 들 때마다, 좋은 감정이 들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하면서 말이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나처럼 이렇게 오랜 기간 할머니랑 같이 살면서, 방도 같이 쓴 경우를 처음 보셨다고 했다. 사실 내 주변에서도 나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다. 그러니 할머니와 나 사이엔 정말 복잡한 관계성이 있다. 어쩌면 엄마와의 관계보다도 더 복잡한 관계성이다. 중학생 사춘기 시절 밤에도 할머니랑 같이 잤고, 대학생 중간고사 기간에도 할머니랑 같이 잤다. 새벽에 할머니가 튼 TV 소리에 잠에서 깬 적도, 그래서 짜증났던 적도, 때때로 시집살이하는 엄마가 안타까워 할머니를 향한 미움의 감정도, 기억도 많았다. 그런데 할머니에게 더 잘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떠올리면서 죄책감도 많이 들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점점 잡아먹는 듯, 내 마음속에 할머니를 향한 '사랑은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 물음에 우습게도 상담 선생님은 내가 느끼는 그 모든 감정이 '사랑'이라고 말해주셨다. 사랑은 참 복잡하다.

 

이별에도 많은 종류가 있다. 연인과의 이별, 이사나 전학 등으로 인한 친구들과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 등. 가족과의 이별은 처음 겪는 것이어서 그랬는지, 예상치도 못하게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랬는지 나는 많이도 힘들었다. 혼자 있으면 너무 힘들어 자꾸 무슨 일을 만들어 내었다. 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아무 것도 안 하면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사람들에게 연락했고 바깥에 나갔다. 지금 쓰는 휴대폰도 힘든 마음이 들 때 충동적으로 구매했다.(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은 충동구매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에 신뢰가 간다.) 그렇게 무기력한 상태로 1년을 보낸 것 같다. 그때 당시에 나는 나 스스로가 무기력하다고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 확실하다. 

 

많이 힘들었던 만큼 나는 할머니를 많이 사랑했을 거다. 내 생각에 사랑이란 지지고 볶고 함께 붙어 있는 그 시간을 함께 함이 결국 사랑이다. 사랑에 마냥 기분 좋은 감정만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미워도 하고 서운해도 하고 그러다가 걱정하기도 하고 결국 그 사람을 생각하고 마음 쓰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할머니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고 아쉽지만, 기쁘게 해 드렸던 적도 있으니 좋은 기억들을 더 오래 간직하는 편이 나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할머니도 그 편을 더 원하실 거다.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엔 안 계시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머니를 생각한다. 

나중에 할머니 납골당에 가서 넣어드릴 스테이크 정식이다. 우리 할머니는 양식을 좋아하셨다. 이건 내가 직접 만든 건데, 살아생전 내가 스테이크를 못 사드린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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